시집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시를 읽으면 마음이 와닿아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시들이 있습니다. 뭔가 하루의 여백을 채워주던가 아니면 빡빡한 삶 속에서 공간을 내어주는 오묘한 느낌이랄까요? 오늘은 올해 만난 가장 좋았던 시집 소개해봅니다.
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, 시집 소개
이 시집은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572로 발행되었습니다. 문학과 지성사의 시그니처 표지로 꾸며졌고 시는 세 챕터로 구성되어 수록되어 있습니다. 책 제목 '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'는 첫 장에 나오는 시 '청혼'의 첫 구절입니다.
올 가을 단풍이 물들기 전에 이 집을 한 조용한 동네서점에서 만났습니다. 서점은 작지만 주인장의 정성스러운 큐레이터로 재미있는 책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이 시집을 둘러싸고 여러 명이 읽고 있었습니다.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. 첫 시 '청혼'에서부터 온 마음을 빼앗겼습니다.
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한다니 무슨 감정일까? 무슨 사랑일까? 그런 표현은 처음 봐서 낯설기도 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. 마치 바스락 거리는 낙엽이 떨어질 때 그 노란 은행잎을 손에 담은 듯한 느낌이랄까요?
진은영 작가의 시는 그렇게 불현듯 다가왔습니다.
진은영 작가 소개
작가는 1970년 대전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. 2000년 <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>을 문학과 사회에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고 해요. 이후 여러 시집을 발표 하는데요 <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>, <훔쳐가는 노래>, <우리는 매일매일>등이 있습니다.
수상도 여럿 했는데요, 대산 문학상, 현대문학상, 천상병 시문학상, 젊은 시인상등을 탔습니다. 문단에서도 인정받은 작가지요. 저는 이 분의 다른 작품은 읽어 본 적이 없지만 이 한 편의 시집으로도 충분히 시인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.
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후기
책 목차 앞 시인의 말에 헤르베르트의 시구 "불행이 건드리고 간 사람들 늘 혼자지"를 자주 떠올렸다는 시인은 한 사람을 조금 덜 외롭게 해 보려고 애쓰던 시간들이 흘러갔다'라고 썼는데요, 이 시들을 읽는 다면 그가 한 노력이 절로 느껴져요. 읽다 보면 그동안 떠오르지도 않았던 먼 추억들을 상기하게 되고 어느덧 혼자가 아닌 올곧게 살아가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.
시 하나하나 미사여구가 가득 찬 것도 아닌 데 표현이 아름다워 자꾸 들여다보게 됩니다. 여름비를 표현한 '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'의 문장이 너무 아름답다고 느꼈어요. 지금은 겨울이지만 여름에 비가 내리면 진은영 시인의 이 한 구절이 저절로 떠 올라 비 내리는 하루가 풍성해질 것 같아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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